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환경이나 요소가 있나요?
가족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요즘엔 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로 가족 카톡방을 이용해서 대화 해요. 아버지가 카페를 하시는데 항상 일과가 끝나시면 ‘오늘은 뭘 했다’는 식으로 먼저 카톡을 보내시기도 하는데,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기도 하구요. 전부 수다쟁이들이에요. 이렇게 소통을 자주 하는데, 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게 좋아요.
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제가 원래 요리사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한국 과학 조리 고등학교’ 시험을 봤는데, 성적 때문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방황을 조금 했죠. 나쁜 짓을 한 건 아니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어렸을 땐 어린 마음에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사춘기였는지 부모님이랑 대화도 많이 안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TV에서 여걸식스 헤어스프레이 특집을 보게 됐어요. 박경림 선배님이 뮤지컬을 도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모두 해맑게 웃고 있고, 호기심도 가득해 보이고, 삶의 열정이 넘쳐 보이는 거예요. 전 그때, 꿈을 저버리고 삶에 대한 의지도 열정도 없었는데 ‘저 사람들은 뭔데 저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넘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뭐에 홀린듯이 어머니한테 ‘나 저거 할까?’ 물어봤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뭐라도 했으면 좋겠어.’였어요. 어머니 예전 꿈이 뮤지컬 배우셨는데, 부모님께서 반대 하셔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내심 이걸 바라셨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아버지는 이게 쉬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데다가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처음엔 반대하셨죠. 그래서 전 제가 이걸 왜 연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A4 용지에 네 장 정도 써서 아버지께 드렸어요. 처음에는 별 효과가 없었는지 계속 반대를 하셨는데,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허락해주셔서, 서울로 올라와서 학원에 다니면서 연기를 준비하게 됐어요.
그럼 학원에 다니면서 연기에 대한 흥미가 더욱 더 많아지게 됐겠네요.
제가 평소에는 좀 감정 표현하는 거에 대해서 인색해요. 표정도 별로 없고,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좀 부끄럽고 민망해요. 그런데 연기를 준비하면서 학원에 다니다 보니까 그 인물을 통해서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방에서 혼자 연습을 하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쏟기도 하고, 뜨거워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그 순간이 점점 좋아졌어요. 무대 위에서 그 인물의 말로 제 안에 감춰져 있는 감정들을 쏟아내는 것 혹은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참 좋더라구요. 그게 참 어렵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좋아서 연기를 계속하게 됐고, 또 제대로 ‘배우’라는 직업을 결심하게 됐던 것 같아요.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아요. 요즘엔 노래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왜 뮤지컬이 매력이 많은 장르인지 <타락천사>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정말 좋아요. (웃음) 직업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 처음으로 작품에 도전하게 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극단 작업을 많이 했어요. 저희 학교는 3학년 때부터 외부 작업이 가능해서, 그때 처음으로 <밑바닥에서>라는 작품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 후에는 극단 신세계라는 곳에서 작업하면서 뜨겁게 부딪히고 많이 배웠죠. 2악장이라는 프로젝트 팀 작업도 있었고… 이런 극단 작업을 위주로 하다가 추민주 연출님의 <웰다잉>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2015년에 학교에서 리딩 공연이 먼저 진행됐는데, 그때는 ‘구파발’이라는 주인공 할아버지 역을 맡았어요. 이후에 이 작품이 창작산실에 뽑혀서 아트원 1관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땐 제 나이대에 맞는 ‘구파발’의 손자 역할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연이 닿아서 또 한 번 민주 연출님의 <구부러져라 스푼>이라는 대명 리딩 쇼케이스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제가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 거기서는 전라도 사투리를 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랩도 하고 재밌게 놀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있어요. 또, 새싹 프로젝트에서 진행하던 <페이퍼>라는 작품도 하게 되면서 제작사분들이 보러 오시게 됐고… 그렇게 <트레인스포팅>도 만나게 됐구요. 이렇게 보니까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웃음)
가장 재밌었던 작품은요?
전부 다 재밌게 했어요. 전 재미가 없으면 못 하겠어요. 제가 작품에서 즐기는 포인트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미드나잇>에서는 비지터의 흥 속에서 내가 부딪히고 혼란스럽게 멈춰있는 그 괴리감 혹은 이질감이 좋아서 이러한 지점을 어떻게 더 분명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파고들게 되는데 그 지점이 재밌어요. <트레인스포팅>의 경우에는 ‘이 스코틀랜드의 청춘들이 왜 버려졌지? 이들의 도피처는 뭘까? 왜 약을 할까? 할 게 이것밖에 없나?’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제가 파고들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구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는 작품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굉장히 복 받았죠. 타락천사는 정말 많은 관객분들을 만나게 해준 정말로 아름답고 감사한 작품이구요.
연기에 대해 최근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평생 가지고 가게 될 고민이긴 하겠지만, 요즘 유독 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는 무엇일까.’ 원래 저는 연기를 배우면서 어떤 배역이든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연기를 할 때 나오는 말들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배역의 말’ 인지 ‘작품 내 배역의 말’인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제가 맡은 배역에 대해 판단을 하고, 저를 투영해서 보고 있는데 뭐가 좋은 건지 참 어려워요. 어렵긴 하지만 이런 고민들이 재밌어서 계속 연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좋은 연기인지 알고 싶어요. 이게 제가 연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구요.
하고 싶은 작품이나 배역 또는 특별한 장르는요?
사실 저는 배역 욕심은 별로 없어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역이 가지고 있는 매력’인 것 같아요. 그게 결핍이든 이기심이든 나쁨이든 그 배역이 작품에 주는 힘이 있으면 저는 그 배역을 매력 있게 볼 수 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색깔을 잘 만져서 담아낼 수 있는 확실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라면 그 역할의 비중과 상관없이 도전 정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 배역은 제 말이 아닌 이상 죽어있는 인물이니까, 살려내고 싶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특별한 장르라면... 스릴러? 안 해봤거든요. 심리적으로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평소에 일상은 어떻게 보내나요?
낮에 연습하고 밤에 공연하는 삶이라서 특별할 건 없지만… 요즘엔 잘 못 보긴 하지만 원래 예쁜 걸 보는 걸 좋아해요. 날씨랑 풍경을 우연히 보게 되는 게 좋아요. 제가 우연한 순간, 스치는 순간에 약하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는 건 평소에는 건조하게 살려고 하고, 그런 것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 우연한 순간들을 보게 되었을 때 되게 감동하는 것 같아요. 또, 요즘엔 쉬는 시간에 장난감 같은 작은 것들을 만지면서 놀아요. 팬분들께서 주셨던 베어브릭을 보다 보니까 귀여워서 모으게 됐는데 그것들로 특별한 모양을 만들면서 놀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기도 하고. 아, 못 간 지 좀 오래 되긴 했는데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최근에 못간 지 좀 오래됐어요. 처음에 혼자 갔더니, 그 뒤로는 혼자가 편하더라구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안 한 지 6개월이 넘었어요. 작품 연습에 들어가면 밖에서 밥을 먹게 되고, 혼자 살다 보니까 1인분씩 요리를 해야 하는데 소량으로 파는 재료는 비싸잖아요. 그렇다고 한 번에 많이 사서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하자니 나중에 꺼내 쓸 때 얼어버려서 쓰기 어렵고…
요리 정말 잘하나 봐요. (웃음)
저 요리 진짜 잘해요. 웬만한 분들 다 감동시킬 수 있어요. 거의 다 잘하긴 하는데 카레 진짜 잘해요. 저만의 레시피가 있거든요. 양파를 먼저 볶고, 캐러멜화 시켜서 달달하게 만든 다음에…. 아, 그 순서가 있는데. 이걸 해드릴 수도 없고... (웃음) 친구들이 먹고 다른 집 카레 못 먹겠다고 하더라구요. 또 고등어 조림도 할 줄 알고, 오일 파스타도 할 줄 알고. 다 잘하는 것 같아요.
연기 공부 외에 또 무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노래는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훈련하는 중이고… 타천 때 댄스학원에 한 달 다니기도 했어요. 특별히 무대를 위해서는 아니었고 그냥 절 위해서 다녔죠. 제가 춤을 멋있게 추지는 못하지만… 참 즐거운 것 같아요. 최근엔 <미드나잇>에서 다시 춤을 추면서 ‘아, 내 인생은 스윙 댄스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웃음) 최근엔 스윙 댄스랑 재즈 음악에 빠졌거든요. 다들 말리긴 하지만 제 다음 도전이 스윙 댄스가 될 수도 있어요. 아, 영어 공부도 하고 있어요. 제 꿈은 할리우드라서. (웃음)
2018년을 굉장히 바쁘게 지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다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기억에 가장 남는 건 <트레인스포팅>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도전하게 됐던 큰 상업 작품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큰 극장에서, 많은 관객과 오랜 시간동안 만나는 게 처음이라 제가 이걸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걱정도 많이 됐죠. 또 서사보다는 미장센과 같은 임팩트 위주로 진행되는 극이다 보니까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바다 형이 많이 도와줬죠. 형과 저는 너무 다른 사람이긴 하지만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바다 형 많이 좋아해요. (웃음)
그럼 지난해 아쉬움이 남는 점이 있다면요?
아쉬움이 남는 건 없어요. 전 그때 당시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발판으로 더 노력 해야겠다는 결론은 항상 내리지만 사실 그 때 그게 최선이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삶에 후회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이 모습이 그때 당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저일 테니까요.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전 다른 사람이 되었겠죠. 전 분명히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이를 발판으로 삼아서 발전해야 하지 후회만 하고 있으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중엔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전 그렇게 생각해요.
2019년 목표나 앞으로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지금은 어떤 연기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미래엔 어떻게 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더 순수하게 연기를 하고 싶은 게 개인적인 목표에요. 또, 전 어떤 특정한 작품 목표는 없기 때문에 ‘뭘 하고 싶어!’는 없지만,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됐을 때 떳떳하게 ‘저 잘 살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 부모님,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 아팠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소원인가? 그치만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웃음)
이 인터뷰를 보고 있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는 없었으면 좋겠고… 물론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에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고민의 방향성이 여러분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행복할 의무는 없지만, 행복해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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