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터뷰는 작품 루드윅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루드윅>에 추가 투입이라 부담도 많았을 텐데 작품을 선택한 계기나 해당 대본을 보고 느꼈던 매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제가 <루드윅> 개막을 약 2주가량 남겨놓고 뒤늦게 합류를 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는 <루드윅>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뭔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걸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공연이 얼마 안 남은 상황이고, 초연인 데다가 제가 평소에 많이 해보지 않았던 느낌의 캐릭터를 맡게 되어서 부담이 컸어요. 처음 연습실에 들어가서 다른 배우분들의 준비된 모습을 보면서 ‘아… 못 하겠다고 얘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너무 겁이 났죠. 그만큼 모든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오기도 생겼어요. 작품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연습실에서 조명이나 다른 무대 장치 없이 피아노에만 의지해서 장면 시연을 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장면들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욕심이 나는 작품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또 제가 추정화 연출님과 한 번도 작업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우연히 보게 되었던 작품들이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출님에 대한 호기심 반, 신뢰 반으로 과감하게 도전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루드윅>에서 맡은 ‘청년’이라는 캐릭터는 어떤가요?
쉽게 말씀드리면 1인 2역이에요. 청년 시절의 베토벤과 장년 베토벤의 조카 역할인 카를, 이렇게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어요.
청년 베토벤과 카를은 나이도 상황도 다른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르는 가사와 극단으로 몰리는 감정선 등이 겹치는 점도 있는 인물입니다. 공통점 그리고 차이를 두는 부분이 있다면?
처음 대본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두 캐릭터 모두 자살을 감행하려는 모습들이 꼭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는 거였어요. 이렇게 크게 봤을 때 두 인물이 서로 비슷하게 보이긴 했지만, 각 인물의 정서나 상황들을 좀 더 세심하게 표현을 해서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결들이 다르다는 것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차이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우선 두 인물이 10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인물이기 때문에 목소리 톤, 창법, 화술, 걸음걸이 등 외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뒀어요. 청년 베토벤은 고뇌하는 음악가의 모습을, 카를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상처받기 쉬운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강조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이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으며, 그사이에는 어떤 갈등들이 존재하고 또 어떤 부분이 이들의 정서를 파국으로 이끌게 했는지에 대해서 더 깊게 파고들려고 했어요. 더 철저하게 텍스트에 매달렸죠.
청년 베토벤과 카를의 ‘차이’에 중점을 둔 거네요.
청년 베토벤과 카를이 죽기 전에 부르는 넘버에 ‘왜 나에게 환희를 보게 만들었나’라는 가사가 있어요. 두 인물이 모두 똑같은 말을 울부짖지만, 그 원망이 향하는 대상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청년 베토벤이 신을 원망하고 있다면, 카를은 계속해서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두려는 삼촌을 원망하는 거죠. 카를에게 자신을 옥죄는 삼촌의 울타리는 신만큼이나 거대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또, 각 인물이 말하는 ‘환희’도 다르게 표현하고자 했어요. 청년 베토벤에게 환희는 ‘더 훌륭한 음악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쁨’이었겠지만, 카를이 말하는 환희란 ‘베토벤의 환희’를 의미한다고 해석했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내가 바라보고 싶은 환희는 따로 있는데 왜 당신의 환희를 나에게 강요하느냐.’ 라는 카를의 감정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죠.
혹시 베토벤 혹은 카를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거나 이렇게까지 괴로웠던 경험이 있었나요?
저도 카를처럼 제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연기로 뒤늦게 진로를 바꾸기 전에는 다른 전공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때 제가 원하는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괴리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 시기에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카를처럼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길을 가야 한다고 강요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가고 싶은 이상과 현실이 다른 괴리감이 꽤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 카를을 보면서 함께 괴로워했던 것 같아요.
최근 <루드윅>과 <6시 퇴근>, 굉장히 다른 분위기의 극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극이고, 또 전혀 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어요. 저는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제가 맡은 인물과 성격이 닮아가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작품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언제든 대사가 바로 튀어나올 수 있을 정도로 대본이 제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보니까, 두 개의 스위치를 적절하게 온-오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구요.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 하게 됐어요. 대본을 들고 다니면서 평소보다 더 자주 확인하고, 또 아침마다 그날 공연에 맞는 인물에 맞게 저를 빨리빨리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 각 작품의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이 있다면요?
<루드윅>은 모두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면에 근거해서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어요. 역사적인 사실을 찾아보고, 책도 읽으면서 공부를 많이 했죠. 그 중 ‘베토벤’의 경우에는 청력을 잃어가는 베토벤의 아픔에 관객분들이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하는 것에 포인트를 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습실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 상대 배역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대사를 전달하고, 저희가 그걸 읽는 방식으로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이런 과정들이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그리고 카를의 이야기는 저도 대본을 접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지만, 그를 통해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보게 됐어요. 베토벤에게 이런 갈등과 인간적인 면모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카를을 통해서 많이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베토벤과 겪었던 갈등과 대립이 관객분들께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카를을 연기할 때에는 베토벤과 카를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6시 퇴근>의 은호는 캔디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사회 초년생에다가 드럼은 한 번도 쳐 본 적 없지만, 팀을 위해서 과감하게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인물이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캐릭터라고 느껴졌어요. 어쩌면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일 수도 있지만, 관객분들이 은호를 보면서 힘을 얻고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아, 참 기분 좋은 친구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작품들과 달리 <6시 퇴근>은 초연에 이어 재연까지 참여하시게 된 작품인데 두 번째 도전이라 특별한 점이 있나요?
사실 초연과 재연 사이의 텀이 짧았던 데다가 관객분들에게 저의 새로운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걱정도 많이 했어요. 다행히도 초연과 다른 새로운 씬들과 은호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넘버가 생겼어요. 또, 이번에 배우가 총 스물일곱 명이거든요. 초반 스케쥴에는 초연에 함께 했던 배우들끼리 호흡을 맞췄었는데, 이제 재연에 새로 합류한 배우들과도 함께 하게 됐어요. 또 다른 공연이 만들어진다는 게 재밌더라구요. 어떤 배우가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분위기를 새로운 낼 수도 있고, 그 합이 주는 매력이 굉장히 크다는 걸 이번 <6시 퇴근>을 하면서 한 번 더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배우분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참 행복한 공연이에요. 무대 위에 있을 때도, 끝나고 나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공연인 것 같아요.
고은호처럼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패기 넘치던 시절이었죠. 처음 뮤지컬 데뷔를 했을 때도 공연을 보름 남겨놓고 뒤늦게 합류를 하게 됐거든요. 원래 하기로 했던 배우가 갑작스럽게 하차를 하게 되면서 합류를 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작품이라곤 학교에서 한 작품 해본 게 다였는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기가 생겼어요. ‘내가 왜 못해?’ 이런 생각이 들면서 패기 넘치게 하겠다고 한 거죠. 저에게도 은호 같은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습 첫날, 연습실에서는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집에 오는 길에 울었거든요. 은호처럼 집에서는 ‘못 해’라고 얘기하면서도 연습실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잘할 수 있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루드윅>에 투입될 때도, 연습실에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지만 집에 와서는 걱정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래서 새벽까지 연습도 많이 했는데 아파트에 살다 보니 늦은 시간에는 집에서 노래를 할 수가 없어서, 주차장에 세워 둔 차 안에서 혼자 노래하기도 했어요. 가만 보면 항상 백조처럼 물 속에서는 아등바등 하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맡은 배역에 자신을 많이 담아서 표현하는 편인가요?
대본을 받았을 때 나와 비슷한 부분에 공감하는 게 출발인 것 같긴 해요. 내가 겪었던 일, 나와 비슷한 부분을 내가 맡은 캐릭터에서 발견하게 되면 깊이 공감하게 되는 면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관객들이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건 사실인 것 같은데, 작품을 거듭할수록 나와 다른 면들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구요. 처음에는 나랑 많이 비슷한 부분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그런 부분들에 주목하게 됐어요. 이게 성장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나와 닮지 않은 부분들도 관객분들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넓혀가려고 하는 중이에요.
그럼 대본을 읽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처음 대본을 읽을 때 첫인상을 바로바로 메모해요. 흥미롭게도, 대본을 읽을 때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구요. 대본에 대한 제 첫인상은 관객분들이 그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이미지랑 다름없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수십 번 읽고 연습하다 보면 처음 느꼈던 첫인상과 많이 달라지거나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놓치는 것들이 많이 생기게 돼요. 그래서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잃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배우님만의 캐릭터 구축할 때,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더 픽션>의 경우에는 일기를 썼어요. 캐릭터의 전사들을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서 직접 캐릭터가 되어서 일기를 썼고, 극 중 내용처럼 작가님에게 직접 편지를 써보기도 했어요. 실존했던 인물을 맡았을 때는, 사실에 따라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고, <6시 퇴근>을 준비할 때는 직장 다니는 친구들에게 굉장히 많이 물어봤어요. 작품마다 달랐던 것 같아요.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어요. 무대에서는 제가 아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폭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은 간접 체험을 통해서라도 경험을 해보려고 하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작업을 그때 맡은 작품에 맞게끔 시도하는 것 같아요.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나 작품은요?
아직 밝은 사랑 이야기는 도전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사랑을 하더라도 비극으로 끝나는 극들을 맡아서…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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