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어독문학과로 연기 비전공인데, 처음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도 말이 너무 없어서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얘길 하실 정도로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유치원 때는 애는 심각하다고 할 정도였거든요. 친구들과 교류도 안하고 말도 안 한다구요. 아직도 기억나는 건 선생님이 앞에서 한 명씩 배지를 달아줬던 기억이 있는데, 별일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절 보는 게 치욕스러웠던 게 생각나요. 빨리 들어가고 싶고 울 거 같았어요. 초등학교 때도 너무 몸이 아팠는데 종일 참다가 집에 갈 때 조용히 울었어요. 근데 제 짝이 절 보더니 얘 울어요 한 거예요. 그때 유치원 때처럼 엄청 곤란하고 치욕스러웠던 게 아직도 생생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장기자랑이나 학교 연극은 다 했어요. 연극을 꼭 했고 주인공 병도 있어서 혹부리 영감이라는 극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그중에서 혹부리영감 역을 했어요. 두 가지가 너무 극단적인 사람이었던 거죠. 내성적인 관종? 그래서 피아노를 어렸을 때부터 했는데 피아노 칠 사람 나와 라고 하면 이럴 때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어요. 노래를 시킨다거나 연극을 하거나 이런 건 내가 하고 싶어서 나서는 일이니까. 그런 데에는 거리낌이 없었어요. 반장, 부반장, 전교 회장 이런 것도 다 해봤어요. 정말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다가 중학생이 됐을 때 호르몬의 영향으로 드디어 24시간 관종이 됐어요. (웃음) 엄마가 너무 힘들어할 정도로요. 늘 대걸레를 들고 다녔어요. 그걸 가지고 노래를 해야 하니까. 노래나 춤도 매일 하고요. 선생님이 ‘최유하. 교무실로 오세요’ 하면 둘 중 하나였어요. 사고 쳤거나 노래시키려고. 그게 너무 재밌었고 그때부턴 나서서 방송부도 하고 고등학생 때 연극반도 했고, 앞으로도 이런 걸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제가 포항에서 자랐는데 뮤지컬을 볼 기회가 없었다가 중학생 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창작 뮤지컬을 엄마가 보여주셨는데 그걸 볼 때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거예요. 그전에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거 해야지~ 이러다가 이건 모든 걸 다 총망라하는 느낌. 내가 가진 걸 다 뽐낼 수 있겠다, 다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그래서 연극반을 꾸준히 하면서 친구들하고 다 같이 연영과 지원했어요. 근데 부모님이 그때서야 그건 네 취미지, 절대 업으로는 안 된다. 하고 반대하셔서 재수하고 학교를 다른 데로 갔죠. 제가 그나마 어학을 좋아해서 어문학 쪽으로 전공하게 됐고요. 거기서 독어 연극하고 지냈어요. (웃음) 그리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매일 공연 보러 다녔어요. 학교가 대학로 쪽이라 심심하면 나와서 현장 결제해서 보거나 했어요. 빨리 나도 저거 해야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어학연수로 뉴욕을 보내주셨는데 거기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처음 레슨을 받았었어요. 연영과 출신이 아니다 보니까 루트를 잘 몰라서 한국에서 찾아본 거로 보컬 레슨과 춤 레슨을 받았었고, 한국에 오자마자 오디션을 봤어요. 그게 합격했구요. 지금은 자존감이 바닥이지만 그땐 자존감이 그득한 상태여서 잘됐던 거 같아요.
데뷔한 지 15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 배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점과 변하지 않은 점
변하지 않은 점은 엄청 열심히 한다는 거? 그리고 과도한 생각으로 나를 괴롭힌다는 점. 이게 변하질 않아요. 그리고 그럼으로써 변한 건 제가 경력이 쌓이고 이 정도 했으면 잘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 제가 더 이상 신인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이 저를 갉아먹어서 그때는 100% 행복했다면 지금은 6~70%밖에 못 행복한 것 같아요. 못하면 너무 죄송하고, 망신이고, 괴롭고. 그게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 안에 두려운 게 많아져서 많이 변한 거 같아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진짜 그냥 평범하게. 좋아하는 일. 사람에겐 타고난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덕후 유전자. 주변에서 너는 참 하나 파면 끝까지 파 얘길 들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하나 꽂히면 그걸 늘 열심히 해요. 운동은 늘 제가 좋아해서 그 운동이 필라테스면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고 마라톤을 하면 마라톤을 열심히 하고. 그래서 마라톤을 하게 되면 대회까지 꼭 나가야 하고.
평소에 집에서는 넷플릭스 많이 봐요. 추천을 한다면… 버드 박스. 버드 박스가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총망라예요. 그리고 제가 산드라블록을 너무 좋아해서 그 배우가 나온 걸 다 봤어요. 그 배우가 연기도 너무 잘하고 소재나 엔딩도 제가 좋아하고요. 그리고 또 티나 페이라는 사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작가 겸 프로듀서 겸 배우거든요. 그 사람이 하는 것도 다 봤어요. 그 사람이 최근에 제작한 키미 슈미트 시리즈를 되게 좋아해요.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를 그냥 늘 틀어놓는 거 같아요. 주변에 봐달라고 영업도 하고. (웃음) 그 중에 타이투스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 사람이 뮤배 지망생이예요. 어딜가나 돋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나 이런 게 저 같구요. 키미 슈미트랑 버드 박스 추천합니다!
트릿처럼 자제력이 부족해지는 순간에 마음을 진정시키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면?
양소민 배우가 오펀스를 보더니 ‘그 버스 씬에서 거구가 쩍벌남이 탔을 때 화가 난 트릿의 모습이 최유하랑 똑같지 않아?’라고 했어요. (웃음) 제가 그런 일이 있으면 정말 정의 구현하고 싶어서 죽어요. 트릿처럼 울화가 너무 많거든요. 누가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에 타는 일이 있으면 말해요. 내리면 타라고요. 아니면 어느 분이 급하게 나오다가 제 발 뒤를 진짜 세게 밟았거든요. 근데 안 친척 무시하고 가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이봐요!’ 크게 외쳤었어요. 그런 공공 예의를 안 지킬 때 정말 화가 나요. 그때마다 그걸 가라앉히는 방법은 제 주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주는 말을 떠올려요. 너 그러다가 큰일 나. 세상이 너무 험해. 이런 걱정들이요. 그때서야 내가 옳은 리액션이더라도 좀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전 그래서 극 중에서도 트릿이 총을 뺏겼을 때 너무 힘들어요. 저는 늘 생각하는 게, 총이 있었으면… (웃음) 물론 쏠 생각은 절대 없는데 상대방이 꼼짝 못 할 무기가 되잖아요. 총이 있으면 상대방의 위협을 받아칠 수 있고 저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슈퍼히어로를 너무 좋아해요. 제가 블랙위도우만 됐어도. 이런 상상하면서 풀어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떠올리며 예전에 100을 했다면 지금은 50만 하는 것 같아요.
해롤드에게 격려를 받게 된 필립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격려의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지.
부모님 눈엔 제가 믿음직스럽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제가 배우 생활하는 걸 싫어하세요. 근데 제가 데뷔할 때 처음 만났던 언니, 유연 배우가 ‘너 정말 잘하는구나!’ 라고 해줬어요. 제가 첫 영화 찍었을 때도 그랬고요. 늘 저의 첫 순간에 진심으로 우러나는, 남들은 엄마에게 듣는다는 ‘내 새끼 최고야!’를 해줘요. 그게 가장 아직도 고마워요. 엄청나게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순간에도 난 네가 그걸 그렇게 해서 좋아. 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거든요. 근데 그게 또 선배고 언니의 말이니까 들으면 믿음이 가거든요. 아직도 첫 뮤지컬과 첫 영화 때 너 정말 잘했어. 정말 좋았어. 그게 저에게 큰 격려로 남아있어요.
올해 voyage(보이지)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직접 쓰고 제작한 영상을 올려주었는데 채널의 기획 의도나 작업 과정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그건 저와 박중금, 심재현 배우 셋이서 하고 있구요. 저는 페미니스트에요. 하지만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제가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예요. 나도 모르게 저 사람에게 여성스럽다. 라는 말을 또 한 거야? 라는 날을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는 말 할 수 있어요. 계속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구요. 예전에는 제가 영상 밑에 글에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하기 꺼려했다. 라고 썼었어요. 저는 그 말이 과도한 투쟁을 부르는 것 같았거든요. 근데 페미니즘에 억지란 없더라구요. 너무나 우리가 오랜 시간을 약자로 살았었고 단지 한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도 남자 성을 딴단 말이죠. 이런 역사와 전통이 너무 오래됐어요. 그래서 과도한 투쟁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인지했어요. 과도해봤자 절대 운동장은 평평해지지 않을 거기 때문에. 지인들이 저 정도는 좀 그렇지 않냐고 말하면 그냥 아니, 라고 말하고 말아요. 저 정도는 해야 어느 정도 효과가 있거든요. 나는 모든 걸 지지한다고 저 스스로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승리, 정준영 사건이 터지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를 미러링을 통해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구요. 남녀 역할만 간단히 바꿔서요. 오미니즘이라는 작품을 쓰면서, 트릿과 마찬가지로 제가 너무 많이 당해왔던 걸 반영했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오미니즘이라는 단어도 제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단어였어요. 페미니즘을 아무리 찾아봐도 반의어가 없는 게 황당했거든요. 그 반의어를 써서 나는 이렇게 세상을 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안에서 제 캐릭터가 되게 멀쩡하게 나와요. 옷이 더럽다거나 머리가 헝클어졌다거나 이런 상태로 나오지 않는 이유가 사실 일상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멀쩡한 사람들이 몰카를 찍기 때문이예요. 제가 이걸 쓰고 어딘가에 올리면서 제 안의 울화가 풀리더라구요.
그리고 도둑이라는 작품도 있는데 그것도 제가 당한 일이거든요. 요새 멘탈 뱀파이어라고 많이 쓰죠. 그런 사람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있는 게 가장 힘들더라구요. 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라고 말을 꺼냈을 때 ‘야, 나 아는 애 그쪽으로 갔다가 되게 나쁜 일 많이 당했잖아...’ 이렇게 하는 게 친구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정해놓은 적정선에서 제가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늘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심어 주고 싶어 해요. 너 왜 이렇게 목소릴 내? 라고 말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는 프레너미(frenemy라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이라는 두 상반된 단어의 합성어)라는 친구들.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구요.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할 때 어려울 거라고 힘 빼는 그런 말들이 나중에 뭐가 될까요? 진짜 까만 부분밖에 안될 거예요. 그런 부분을 쳐내는 건 오로지 본인의 몫으로 남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너는 내 친구야 뭐야, 라는 메시지를 던져봤어요.
지금은 여름쯤에 촬영한 첫사랑 트위스트라는 작품을 편집하고 있어요. 저희끼리는 나름 최장편이라 편집이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열심히 작업하고 있어요. 주제는 기억미화, 왜곡에 대한 것들이고요. 그거의 시작은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대 라는 말에서 시작됐어요. 상하이 트위스트처럼 흥겹게 첫사랑 트위스트를 춘다는 의미로 따왔어요. 한 편으로는 그게 저한테는 쇼하고 있네,구요. 또 트위스트(twist), 왜곡이라는 뜻도 담고 있고요. 두 가지 의미로 정했어요. 저도 많이 미화했겠죠. 제 경험도 많이 들어갔어요.
젠더프리 캐스팅을 시도하는 극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과 본인의 소감은?
제가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아 바지가 불편해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근데 불편한 게 바지가 잘못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바지가 불편할 정도로 액션이 큰 연기해보는 게 처음이라서요. 남자 배우들은 보통 연기 하다가 바지 찢어진 적 있다 라는 얘길 우스갯소리로 하거든요. 이번에 김태형 연출님이 ‘여자도 무리 없이 그만큼의 액션을 해내고,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어.’ 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주셔서 굉장히 감사해요.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도요. 이번에 오펀스를 하면서 제가 배우로서 한 번도 이 정도 게이지의 감정을 해본 적이 없더라구요. 이걸 했던 배우들은 정말 재밌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또, 제가 수진 배우랑 십년지기거든요. 왜 브라더후드 극은 많은데 우리의 시스터후드를 보여줄 수 있는 극은 없을까 라는 이야기를 꽤 해왔어요. 극 중에서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데 이미 저희는 그 감정들이 준비된 상태로 들어가서 너무 재밌게 하고 있어요. 누구 때문에 내가 무조건적인 희생을 했다거나, 누구 때문에 내가 버림받아서 평생을 분노한다거나. 남성의 서사에 끼워져 있지 않고 처음으로 이 친구와 내가 같이 나아가는 걸 보여드릴 수 있어서 행복해요.
이 젠더 프리가 열풍이나 트렌드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아는 제작자가 이런 것도 되게 여자로 하면 좋을 거 같다 하셔서 해달라고 했더니 괜히 트렌드에 휩쓸렸다고 욕 먹을까 봐 걱정된다고 하시거든요. 하지만 단순 트렌드라서 하면 뭐 어때. 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 반짝 트렌드가 너무 커져서 10개 극 중 7~8개를 젠더 프리로 한다고 쳐요. 그럼 나중에라도 서너 개는 남지 않을까? 그럼 그땐 굳이 젠더프리를 하지 않아도 인간 대 인간으로 쓰여진 극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펀스>처럼 젠더 프리로 공연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과 배역이 있다면.
<여신님이 보고 계셔>요. <남신님이 보고 계셔>로. 그 작품이 되게 캐릭터가 다양하게 나오잖아요. 한영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또 대부라는 영화를 되게 좋아해요. 저는 마피아라면 다 해보고 싶고. 알파치노가 했던 역할이요. 점차 흑화되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최유하'란?
저요? 겁쟁이요. 어떤 겁쟁이냐면.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고 바꾸고 싶어 하는데 겁쟁이인 사람이요. 선구자는 못될 거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누군가가 뭘 깼을 때 정말 동경하구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다들 무교라고 많이 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유교다. 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웃음) 흔히 유교 사상이라고 불리는 고루한 사고방식과 기득권층, 페미니즘에 대해서 늘 투쟁하고 열심히 하지만, 내가 무언가 제대로 하고 있나 늘 괴로운 겁쟁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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