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터뷰는 작품 미드나잇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미드나잇>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볼까요? 어느 부분에서 매력을 느껴 작품을 선택하게 됐나요?
액터뮤지션이라는 형식이 너무 좋았어요. 액터뮤지션이 참여한 작품들을 외국에서 봤었는데 이게 한국에서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외국에는 액터뮤지션을 위한 과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한국에선 굉장히 생소하잖아요. 악기를 연주하면서 연기를 하는 일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 제일 처음엔 이런 호기심 때문에 하고 싶어졌었어요. 텍스트가 많은 극에서 이런 장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고, 작품을 하기로 했던 것 같아요.
<미드나잇>에서 맡은 ‘맨’이라는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아내를 굉장히 많이 사랑하는 인물이에요.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나쁜 행동이나 선택을 한 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맨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칼이 들어왔다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결코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홍승안 배우가 표현하는 ‘맨’은 사랑이 넘치는 남편인 것 같아요.
사랑 없이는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심지어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해요. 처음부터 그렇게 연기하지는 않지만 비지터를 만나고 그런 순간들을 겪으면서 결국 나보다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그럼 극 중 ‘맨’의 행동은 아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기심 때문인지.
둘 다인 것 같아요. 사건을 만나면서 결국 나보다 더 중요한 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맨 대사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라는 대사인데, 이 말을 꺼내게 한 이유가 ‘프로텍션’부터 시작되었을 수는 있어도 그 말에는 결국 진심이 많이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대사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비지터’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주 나쁜 사람이죠. (웃음) 지원이 형 말로는 방문자인데, 방문자가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내가 삶을 살 때 항상 어떤 계기 때문에 내 가치관이나 선택이 흔들리고 바뀌잖아요. 차라리 몰랐으면 나쁜 것도 모르고 쭉 살았을 거고, 그게 더 편한 삶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르는 걸 알게 되고 그게 들리는 순간 선택에 대해서 의심하고 고민하게 되니까요. 그렇게 만드는 건 ‘네가 정말 잘살고 있냐’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특별한 계기일 수도 있고... <미드나잇>에서는 그 계기가 비지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밤길 가다가 달이 너무 환하면 괜히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아니면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쓸쓸하지?’ 같은 생각을 문득 하게 되는데 비지터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예고 없이 등장해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체인 것 같아요. 극 중 등장하는 비지터 대사처럼 ‘모든 곳에 있는’ 존재요.
그럼 ‘맨’과 ‘우먼’에 대한 생각은?
맨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참 아등바등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인물이에요. 죽기 싫어서 고위 간부직에 올랐고 남들을 밀고해서 그 자리에 올랐잖아요. 하지만 그건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먼에 비해 출신이 뛰어나지 않은 인물인 데다가 그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보다 빨리 정보를 모아서, 발 빠르게 행동했어야 해서 그런 선택들을 했던 것 같아요. 비록 나쁜 방법을 쓰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그랬던 거니까.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먼은 속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하고 어떤 생각으로 말을 뱉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방금 했던 말이 진심인 것 같다가도 사건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진심이 나오니까요. 모든 게 다 진심인 것 같고, 그래서 더 헷갈리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해는 돼요. 남편인 맨은 그게 악이든 선이든 상황에 따라 진심이 바뀌거든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저버렸다가 그것을 다시 지키려고 계속해서 다른 선택을 반복하는 인물이라면 우먼은 매 순간에 진심인 인물 같아요.
<타락천사>에 이어 <미드나잇>도 재연과 많이 달라진 작품 중 하나인데, 초연과 다른 재연 작품들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는지.
<타락천사> 때는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들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저보단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저는 제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극에 도전한다는 점에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2인극인 데다가 서사의 이어짐보다는 보여주는 형식 위주인, 콘서트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많은 극이었는데, 전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처음엔 많이 버거워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작품을 했던 규 형, 훈정이 형, 지원이 형, 풍래 형, 지후 형 전부 다 뮤지컬을 많이 해봤던 형들이라 저만 뮤지컬이 처음이었어요. 물론 전에 <웰다잉>이란 작품으로 뮤지컬을 도전하긴 했었지만 3주라는 짧은 기간이었고, 멀티 역이라 무대에 서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부담감이 없었어요. 그런데, <타락천사>로 큰 롤을 처음으로 맡다 보니까 설레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타락천사>는 1인 2역이라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쟈코모’라는 캐릭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생각보다 많이 안 귀여워요. 쟈코모가 무조건 귀여워야 하는 캐릭터는 아니긴 하지만,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 관객들에게 예뻐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나름 제 기준에 맞춰서 순수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연습실에서 다들 안 순수하다고 얘기하더라구요. 그 뒤로 어떻게 하면 순수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규 형님이 ‘네가 어떤 게 순수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떤 것에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해봐.’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말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쟈코모를 연기할 때 어떤 것을 처음 받아들인다, 호기심, 궁금함에서 출발하니까 저도 재밌더라구요. 반대로 발렌티노의 경우에는 수천 년을 살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많이 잃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나른하고 의욕이 보이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굉장히 재밌었어요.
첫 뮤지컬 도전이라 어려웠던 점은요?
제가 목이 나간 적이 있었어요.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제 잘못이었죠.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공연 하다 보니 목이 점점 상하더라구요. 그렇게 목이 한 번 크게 나가고 나니까 굉장히 죄송하고 저 자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공연을 완벽한 상태로 올려야 하는 것이 배우의 책무이고, 또 제가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한 거니까요. 그 뒤로 조절하는 법을 배웠어요. 목을 관리하는 법도 많이 물어보고, 발성을 다시 배우기도 하고, 좋아하는 커피도 줄이고, 목에 좋다는 건 다 먹었던 것 같아요. 이때, 극복하는 법을 많이 배웠죠. 힘들기는 했지만, 많이 배울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기 때문에 제게 의미가 있어요. 이제는 어떤 작품을 만나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 뒤로 자신감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행복한 작품이에요. <미드나잇>은 현재 진행형이라…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면 팀에서는 계속 막내인 것 같아요.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요?
좋은 선배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많은 극을 한 건 아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재영이 형, 승현이 형, 또 다른 창작진들을 포함해서 전부 다요. 사실 제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서 연기적인 측면에서든, 평소에든 불편한 걸 숨기기보다는 직접 얘기하는 편인데 그걸 털어놓으면, 같이 고민해주는 분들이라 참 좋아요. 제가 먼저 하시고 싶은 얘기 있으시냐고 먼저 물어보는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아, 인사도 항상 밝게 하고 있어요. (웃음) 최근에는 풍래 형을 만났는데 저도 모르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포옹하려고 팔부터 벌리기도 했어요. 승리 형이랑도 그랬고... 형, 누나들이랑 잘 지내는 것 같아요.
<트레인스포팅>에서 함께 했던 고상호 배우와, <타락천사>에서 만났던 양지원 배우와 이어서 또다시 파트너로 일하시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상호 형은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요. <트레인스포팅>에서 토미랑 식보이로 만났었죠. <트레인스포팅>은 한없이 뛰고, 소리 지르고, 몸을 뒤틀면서 연기했던 작품이라 저한테 강렬하고 재밌다는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상호 형이랑 만나서 웃기고 반가웠고 같이 잘해보자고 얘기했었어요. 지원이 형은 타락천사 하면서 너무 친해졌어요. 같은 역이라 만날 일이 없었는데, 그 시기에 콘서트를 같이 하게 되면서 날마다 연습을 했거든요. 새벽마다 형이 절 태워다줬어요.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닌데도 살짝 돌아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좋은 기사님이었죠. (웃음) 형도 수다를 좋아해서 얘기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어요. 아주 좋은 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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