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부터 촬영을 진행하게 됐네요. 이른 시간에 나오기 힘들지 않았어요?
저는 레드썬 하면 잠들어요. 어제도 동생 방에서 기절해서 잤어요. 근데 잠 자체가 많지 않아서 6~7시간 자면 딱 깨요.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지만, 오늘은 일정이 있으니까 일찍 일어났죠. 저는 아침에 잘 일어나는 편이에요.
사진 컨셉을 직접 골랐는데,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
사실 처음에 원하는 컨셉을 물어보셨을 때 되게 부끄러웠어요. 일단 제가 <루드윅>에서 맡은 역할이 남장을 하는 캐릭터인 데다가 지금까지 발랄 상큼한 분위기로는 많이 찍어봤는데 이런 분위기는 도전해본 적이 없어서 한번 찍어보고 싶었어요. 여자와 남자 사이에 경계선이 없는 그런, 중성적인 느낌이 어떨까 싶었어요.
무대의 김려원을 보면, 사람 대하는 게 굉장히 능숙한 편인 것 같아요.
원래 엄청 내성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상대방에 따라 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요. 시끌벅적한 자리에 가면 말을 안 하고 조용한 자리에 가면 말을 계속해요. 분위기를 좀 예민하게 느끼는 타입인 것 같아요. 정적을 못 참아서 계속 떠들다가 집에 가서 ‘왜 이렇게 까불었지?’ 하고 후회할 때도 있고, 또 말이 되게 없을 때는 ‘평소에 말을 세 마디는 하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안 하기도 해요.
인스타그램을 보니 그림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림이 먼저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요. 요즘엔 많이 바빠서 잘 못 그려요. SNS에 올렸던 <오디너리 데이즈> 때 핸드폰으로 그린 거 말고는 최근엔 뭘 못한 거 같아요. 학원은 고등학교 때 1년 다니다가 그만둬서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림은 여전히 좋아해요.
그럼 노래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노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HOT를 알게 되면서 좋아하게 됐어요. 광적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고, 그게 제가 처음 들은 가요였어요. 처음으로 노래가 재미있다는 걸 느꼈죠. 그러고 나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 말로는 제가 앞에 나가서 노래를 많이 불렀대요. 발표나 자기소개 같은 건 진짜 싫어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고등학교 때는 예체능반이라서 미술을 계속하다가,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그게 좀 잘 됐어요. 그림은 집에서 혼자 그릴 수 있으니까 노래를 계속해야겠다 싶어서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실용음악반으로 바꿨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더 공부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엄마한테 난 하고 싶은 게 정해져 있다고, 학교를 그만두면 안 되냐고 한 적도 있는데 그래도 학교는 가라는 말씀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늦게나마 대학교도 간 것 같아요.
뮤지컬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노래를 하다가 작곡가분이 뮤지컬 한 편을 보여주셨는데 그때 ‘이런 게 있다니!’ 하고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게 19살 때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3년 뒤에요. 3년 뒤, 23살에 아예 뮤지컬 과로 진학을 했어요. 그 땐 뮤지컬 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친구가 학원에 데려다줘서 그때부터 하게 됐죠. 1학년 때는 아무 것도 몰랐어요. 무슨 작품에 무슨 배우가 잘한다, 좋다 어쩌고저쩌고 얘기들 하는데 전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학교에 다니면서 점점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희 가게에서 조정석 배우님을 보게 된 적이 있거든요. 제가 친구에게 뮤지컬과 붙었다고 얘기를 하는데 배우님이 “아, 뮤지컬 하세요?”라고 물어보시면서 본인도 뮤지컬 배우라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슨 작품 하셨냐고 물어봤더니, 차분하게 작품들 이름을 얘기해주셨어요. 그거 듣고 저는 “어? 많이 하셨네요!” 이랬죠. (웃음) 집에 가서 동생에게 “너 조정석 알아?”하고 물어봤더니 어떻게 모르냐며 놀라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난 뒤에 너무 웃긴 에피소드로 남았어요. 그분은 얼마나 웃겼겠어요. 뮤지컬 한다는 애가 날 몰라? 하구요. (웃음)
그럼 첫 뮤지컬 작품은 무엇인지.
학교에서 처음으로 공연한 게 <내 마음의 풍금>이었어요. 거기서 양선생이라는 캐릭터를 맡았죠. 지철이가 조정석 배우가 했던 그 역할을 맡았구요.
김지철 배우랑도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네요.
네, 그땐 선배님이었어요. 제가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저희 기수가 꽤 많이 차이나요. 지철이는 2기, 제가 5기. 하늘 같은 선배님이었죠. 그래서 아직도 계속 얘기하더라고요. ‘으이구, 내 후배였는데.’ 이러면서요.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요?
모두에게 애정이 있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 명만 꼽을 수 없어요. 전부 다 생각을 많이 해서 만든 캐릭터다보니 누가 가장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못 꼽을 것 같아요.
그럼 혹시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그에 동화되는 편인가요?
네, 너무요. 브로드웨이에는 배우마다 정신과 선생님들이 있다던데 정말로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루드윅> 같은 경우도 많이 울다 보니 평소에도 예민해지고 말투도 차분해지더라구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유미리였을 때는 막 날아다녔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네가 유미리 아니야? 너대로 연기하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죠. 요새는 마리처럼 할 말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소랑은 다르게 계속 할 말을 하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돌이켜 보면 제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마음에서 동요가 되어야 대사가 나오니까 자꾸 그 인물이 되어가고, 저도 모르게 실생활에서 그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블데드>를 할 때는 욕이 많이 나왔거든요? 그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블데드>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웃음) <서른즈음에> 할 때는 대학생 퀸카 느낌의 캐릭터를 맡았는데, 차분해져서 조용조용하게 말하게 되더라구요. 지금 하고 있는 <루드윅>이 많이 어둡다 보니 밝은 작품을 한 번 해야 해소가 될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욕심이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저는 지금까지 원하던 대로 된 거 같아서 정말 감사한데,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한 캐릭터로 나가시는 분들도 많고 그분들이 너무 멋지긴 하죠. 딱 그 역할이다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분들이요. 그런 것도 너무 멋있지만 저는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해보면서 제가 이런 표현도 할 수 있고 이런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요. 저는 그런 걸 하면서 기쁨을 많이 느끼는 것 같거든요. 또 제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 배역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는 말도 듣고 싶어요. <이블데드> 때 1인 2역을 맡았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 몰랐다’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캐릭터를 다양하게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대가 가지고 있는 매력 뭘까요?
일단 직접 같이 호흡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단편 영화를 한 번 찍었었는데 움직임이 한정적이고 정해져 있었거든요. 무대는 그런 게 더 자유로운 편이다 보니 좀 더 재밌는 거 같아요. 또 회차를 거듭할수록 제가 찾게 되는 것들이 있기도 하구요. 몇 번씩 하면서 좋아지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두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무대가 재밌긴 하지만 ‘내가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잠시라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는 해요. 뮤지컬 젊음의 행진의 앙상블에서 영심이를 맡게 되면서는 처음으로 뮤지컬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긴장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인터미션 때도 대기실에 안 내려가고 계속 무대에 있었어요. 제가 부담을 좀 많이 느끼는 타입이에요. 틀리거나 실수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한테 좀 엄격한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걱정을 이겨내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
연습, 연습, 또 연습이요. 그래서 좋아하지 않으면 정말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계속해서 심판받잖아요. 무대에 설 때마다 심판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무대 전에는 ‘잘해야 돼,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실수하면 안 돼.’만 되뇌다가 끝나면 ‘아, 끝났다!’ 하고 내려와요. 그리고 혹여나 실수가 있었더라도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 행복함을 얻으면서, 그걸로 속상한 걸 잊으려고 노력해요.
배우 김려원에겐 어떤 것이 고통스럽지만 해야 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인가요?
갑자기 어떤 것을 해야 할 때 부담이 커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뭘 한다는 게 큰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편이에요. 기지를 잘 발휘하는 타입이 아니라 오디션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죠. 물론 다들 오디션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전 특히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 있어 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내 마음이 이게 맞다고 할 때까지 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싫어요. 그래서 오디션이 정말 힘든데, 하고 싶은 일이 그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 이게 아닐까 싶어요. 친구들과 도대체 언제쯤 오디션을 안 볼 수 있을까 얘기하기도 하고, 선배님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이번 <루드윅>이 끝나고 쉬면서 뭘 할 예정인지.
이제 또 그림을 좀 그리지 않을까요? 강아지랑도 놀아주고요. 집에서 정리를 계속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원래 정리를 좋아하진 않았는데 요새는 무언가를 정리하면 기분이 좋더라구요. 근데 사실 제가 집에 잘 붙어있질 않아요. 약속을 많이 잡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에요. 제가 좀 외로움이 많은 타입인 것 같아요. 집에 있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래서 자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또,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가 지나가는 걸 못 참는 것 같기도 해요. ‘나 오늘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안 좋아져서 뭐라도 해야 하는 타입이에요.
지금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올해 스케쥴이 연말까지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뭘 할지 결정된 삶을 살고 싶어요.
배우 ‘김려원’에게 사람들이 기대해줬으면 하는 이미지 혹은 버려줬으면 하는 이미지가 있는지?
제가 조용한 역할을 하면 주변 분들이 적응을 못 하시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언니들이 있으면 엄청나게 까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다가 <서른 즈음에>에서 첫사랑 이미지를 맡게 되니까 그게 너무 웃겼나 봐요. 그런데 제가 조용한 역할을 할 때마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평소에 좀 다르게 처신을 해야 하나? <이블데드>의 애니/셀리 같은 역을 너무 많이 하면 안 좋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했었는데, “너를 처음 보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시더라구요. 올해는 다행히도 여러 역할을 하다 보니까 그런 말들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이미지를 버리기보다는 공연을 보러 오시면서 제가 이전에 했던 것들을 잊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를 처음 보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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