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세 뮤지컬 배우의 이야기.
<협객외전>에서 맡은 역할과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승준: 맹도 외 역의 이승준이라고 합니다.
이동연: 안녕하세요. 맹도 외 역을 맡은 이동연입니다. 소개하는 김에, 전부터 제 MBTI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INFP입니다.
이승준, 김채승: I라고?
이동연: 나 I야! …어른인가? (웃음)
김채승: 전 이런 개그 좋아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나라 최고의 뒤태, 맹도 외 역할을 맡은 김채승입니다.
세 분 모두 MJStarfish의 작품에 처음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참여하게 된 계기나 과정 또는 소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승준: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디션만으로 참여하게 된 첫 작품이라 매우 값지고, 절 알아봐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동연: 이전부터 대학로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오디션 자체가 드문 편이라 기쁘게 참여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병행하고 있던 다른 일정이 있다보니 참석할 수 없는 오디션 시간을 배정받게 되었어요. 평소 같았다면 저와 시기가 맞지 않았던 오디션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지 여쭤봤고, 감사하게도 편의를 봐주셔서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행복합니다!
김채승: 저 또한 오디션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원래 (조)성필이와 친한 사이라서 <결투> 초연을 이미 본 상태였고, 그 이후에 <협객외전>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되었는데 <결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적혀있어서 재밌을 것 같았어요. 전작을 너무 재밌게 봤었어서 기대가 컸는데, 좋은 기회가 되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협객외전과 이어지는 극인 <결투>를 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전 극에서 인상 깊게 봤던 것이나 현재 극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져온 포인트가 궁금합니다.
이승준: 저희 모두 <결투>와 <협객외전>이 이어지는 내용이라고만 알고 있었고 자세한 줄거리나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모르는 상태로 봤어요. 그중에서 오디션 공고에 쓰여있는 캐릭터 이름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캐릭터들 위주로 유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문제는 무술이었던 거죠.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정신없이 지나가는 무술 동작들을 보면서 ‘어. 나 이거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많이 됐어요.
이동연: 기만입니다. 날아다니거든요.
김채승: 자꾸 아닌 척을 하는데 저희 중에서 제일 잘합니다.
이승준: 평소에 맨몸 운동이나 헬스만 할 뿐 활동적인 운동을 하진 않아서… 정말로 무술에 있어서는 정말로 세게 각오를 하고 참여했습니다. 그 외엔 캐릭터성을 유심히 보려고 했습니다.
이동연: 무협 장르 자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채로 <결투>를 관람했는데,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만약에 내가 하나의 인물이 아닌 여러 명의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면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봤던 것 같아요. 보기 전엔 유튜브에 올라온 스페셜 커튼콜로 선행 학습하며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본 공연을 보니 배우분들이 정말로 날아다니시더라고요. 당시엔 ‘내가 할 수 있을까? 잘못된 길을 선택했나?’라는 막연한 고민도 했지만 하니까 되더라고요. (웃음)
김채승: 저는 원래 무협지를 좋아하기도 하고, <결투>도 너무 재밌어서 6번이나 봤는데요. 취선과 맹도, 비룡과 천천의 끈끈한 관계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 무공을 잃을 걸 알면서도 그 상황에서 사제에게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을 하는 걸 보고 가슴 속에 뜨거운 뭔가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물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보고, 이 부분은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엔 저 역시도 무술 장면을 보면서 ‘큰일 났다. 나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협객외전에서 액션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액션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나 힘들었던 점, 에피소드 등이 궁금합니다.
이승준: 기존에 참여했던 배우들은 합이란걸 맞춰봤지만, 저희는 생판 처음 칼을 잡는 입장이다 보니 새롭게 투입된 배우들끼리는 기존 연습 기간보다 먼저 무술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정말 모두가 데면데면한 상태에서 기초적인 액션들을 배웠는데 아마 다들 똑같았을 거에요. 나는 분명 검만 휘둘렀는데 다음 날 일어나면 온몸이 아프고 전완근이 붓고… (웃음) 그리고 합을 맞춘다는 게 공연 중에는 검을 맞대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저희는 안전해야 하잖아요. 내가 실수하면 상대방이 다치거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정말 높겠구나 싶어서 지금도 액션 장면 들어가기 전에는 긴장이 많이 됩니다.
이동연: 재밌는 얘긴 아니지만, 사전 연습 당시 에피소드를 말하면 다들 아침이랑 밤에 얼굴이 좀 달랐어요. 땀도 많이 흘리고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붓기가 다 빠지더라고요. (웃음) 처음 왔을 때는 스트레칭, 점프, 순발력 같은 기초 체력 훈련부터 시작했는데 저는 평소에 가만히 앉아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연습 첫날 20분이 지났을 때부터 위기가 찾아왔어요. 너무 힘들어서 앞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땐 다들 이제 막 만난 상태라 차차 알아가는 단계였어서 힘든 티를 덜 내고 오기로 버텼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채승: 저도 몸 쓰는 걸 정말 싫어해서 <결투>를 볼 때부터 두려웠어요. 혼자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플라스틱 칼을 사서 혼자 휘둘러보기도 했고요. 그때는 열심히 하면 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연습을 시작하고 오만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도 많이 했고 혹여나 다른 형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풍검 역할의 성재 형이 진짜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떻게 하면 안 다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잘 알려주고 작은 부분들도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거든요. 그래서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성재 형에게 많이 도움을 받아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검 쓰는 건 정말 어려워서 꾸준히 연습 중입니다. 결과적으로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오디션 봤을 때보다 몸무게가 10kg 정도 빠졌더라고요.
극 중 맹도와 비룡이라는 매우 상반되는 두 인물을 맡으셨는데, 각자 생각하는 맹도와 비룡의 주요한 키워드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승준: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우선 이승준이라는 사람의 한 몸을 통해서 2가지 캐릭터를 접근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둘에 대해 차이점을 두지 않고 공통점을 먼저 생각해 봤어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모든 걸 다 잃고 혼자 남은 상황에서 맹도에겐 취선이 있었고, 비룡에게는 풍운쌍검이 있었는데 자신을 품어준 사람들을 결국 다 잃게 되잖아요. 방식은 달랐지만 비슷한 상실감에서 먼저 출발했고, 그 사이에서 둘이 가진 타고난 기질과 성정에 차이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크게 했어요.
이동연: 맹도랑 비룡은 표면적으로 봤을 땐 전혀 다른 인물인데 사실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거 같아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제라고 생각했는데요. 정말로 형이고 존경심을 느껴서 사형이라고 부를 수 있고, 나보다 못났지만 그래도 사형이니까,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두 인물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히려 사형을 생각하는 마음은 비슷한데, 해독환을 양보해준 사형에게 미안함을 느껴서 떠나는 맹도와, 떠나지 않는 비룡이 가장 다른 것 같아요.
이승준, 김채승: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이거야!
이승준: 비룡은 그래도 품어가는 애인데 맹도는 절대 그걸 품어갈 수 없는 기질인 거지. 이걸 설명할 수 있는 탁월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김채승: 모든 의견에 동감하고 저도 비슷한 말을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한번 잘 정리해보겠습니다. 두 인물이 가진 키워드는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맹도는 우직한 성정 때문에 사형이 무공을 잃은 것에 관한 책임으로 떠나는 걸 선택했다고 생각했고, 비룡은 이미 풍운쌍검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끝까지 사형을 책임지겠다는 의미로 각자의 각오와 성정에 맞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준: 정리를 아주 잘했어. (웃음)
맹도로서는 상대 역의 취선 배우들이, 비룡으로서는 천천 배우들이 각각 더블인데요. 공연을 봤을 때 상대역들의 성향이나 스타일이 매우 다른 점도 관전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모두 최대한 비슷하게 대하려 하는지, 아니면 다른 점에서 오는 각각 다른 에너지를 맞춰서 소화하려고 하는 편인지?
이승준: 아마 다른 동료도 저희 셋이 다 다르게 느껴지겠죠? 저는 저의 기본 자세를 지키되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그대로 마주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같은 배우여도 날마다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주의 깊게 캐치해서 함께 가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실제로 (유)성재 형은 저희보다 어른이시고 평소에도 너무 잘 대해주셔서 진짜로 편해요. 성필이도 실제 나이는 저보다 동생이지만 제가 워낙 캐릭터에 이입해서 생각해서 그런지 나름 든든한 면모가 무대 위에서 보여요. 그런데 이제 비룡의 입장에서는 천천들이 조금 달라요. (박)경호가 되게 어른스럽더라고요.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긴데다 실제로는 저랑 동갑인데도 사형다운 면모가 굉장히 강하고. (웃음) (이)세헌이는 사형인데도 내가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무조건 내가 같이 가야 할 것 같고.
이동연: 저도 더블 성재 형님들이랑 하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지는 편인 것 같아요. 동생으로서 사랑받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전)우형이 같은 경우는 개구진 맛이 좀 있어요. 사람을 잘 놀리거든요. 좀 열받지만 맹도로서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취선 역 배우들의 애드립이 정말 많이 달라요. (유)성재 형님은 무대에서 예고 없이 훅 들어오시는 편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는 편이고, 성필이는 애드립을 하더라도 미리 “형, 저 여기서 이렇게 해도 돼요? 이렇게 오늘 해볼래요!”라고 미리 말하는 부분에서도 성격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천천들을 얘기하자면 세헌 천천은 F 성향이 강하고, 경호 천천은 T 성향이 강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채승: 저도 제가 생각한 맹도와 비룡이라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들이 가진 기본적인 큰 방향은 계속 유지하는데, 다른 배역의 형들이 에너지를 주면 그 에너지를 받아서 새로운 반응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어떤 조합인지에 따라 바뀌는 에너지들이 무대에서 느껴지는 게 되게 재밌어요. 물론 너무 벗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제가 정한 틀 안에서 ‘이런 식으로 나한테 대사가 오면 어떻게 이 인물은 반응할까?’ 생각을 많이 해보곤 해요. 취선 역 같은 경우, 성필이는 실제로 오래된 친구이기도 해서 사형사제를 할 때도 막역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큰 성재 형님 같은 경우에는 아주 든든한 사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장난도 많이 치시지만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을 끝까지 믿을 수 있겠다 싶어요. 유자같은 경우에는, 우형이 형이랑 같이 공연 할 때면 되게 티격태격하지만 친구 같은 느낌도 강한 동시에 사랑의 경쟁자 같은 느낌이고, 작은 성재 형님은 유자가 짓궂은 동네 형처럼 많이 느껴져요.
맹도가 일심문에 입문한 계기는 정말 산도화 때문인가요?
이동연: 오로지 산도화 때문은 아닌거 같아요. 자신감 충만하던 소년 영웅이 자신감이 꺾여 분한 상태인데 취선이라는 인물이 속을 긁는 얘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할 때 그 인물이 저를 붙잡아 줘서 그 사람의 악의 없는 진심을 알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산도화도 산도화지만, 취선의 마음을 보고 온 것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살아보자, 싶어서 일심문에 찾아갔다고 생각합니다.
김채승: 다른 좋은 문파도 많았을 텐데 왜 굳이 일심문에 들어갔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맹도의 대사 중에 일심문의 사부님이 엄청난 은둔 고수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게다가 작가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일심문은 강호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문파였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그래서 맹도가 죽으려고 했으나 취선 덕분에 다시 살기로 마음먹고, 더 강해져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어디로 갔을지를 생각해보면 일심문에 있다는 은둔 고수 사부님께 직접 배우기 위해 입문했을 것으로 같습니다.
이승준: 저는 각 인물이 서로 마주친 순간들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같은 역이더라도 배우들이 생각한 게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취선이 어떤 말을 했건 맹도는 자만했던 자기의 모습이 싫어서 죽으려고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던 순간에 나를 살리려고 하는 취선의 모습을 마주하잖아요. 이전에 나에게 무슨 말을 했건, 어떻게 대했건 순간 그 사람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한테도 꽃을 줬을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날 생각해준 사람은 취선 뿐이라서, 저는 오로지 취선을 생각하고 입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는 어떤 캐릭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나요?
이동연: 제 성격 자체는 취선에 가까워요. 맹도와 비룡은 저랑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그래도 제가 맡은 역과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제가 형들을 좋아하는 점을 꼽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생일 때가 좋습니다.
김채승: 저도 맹도나 비룡과는 거리가 먼 성격인 것 같아요. 닮은 캐릭터를 고르자면 어린 소산이나 유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 둘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즐겁게 산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도 뭐든지 즐겁게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준: 전 무조건 맹도가 편해요.
이동연, 김채승: 맞아요. 진짜 평소에도 맹도예요.
이승준: 하지만 큰 이유는 못 찾겠어요.
그러면 다른 분들이 이야기해주세요.
김채승: 제가 승준이 형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겉으로는 티를 많이 안 내면서도 챙겨주는 스타일이에요. 무술 동작 같은 것도 승준이 형한테 물어보면 “나도 그냥 하는 거야. 몰라.”라고 해놓고 제가 헤매고 있으면 와서 “이렇게 해. 이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더 잘 돼.”하고 알려주고 도망가요. 안 챙겨줄 것같이 해놓고 다 챙겨주고. (웃음)
이동연: 되게 쑥스러움도 많거든요. 칭찬하면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고.
김채승: 그러니까 제가 “형 옷을 너무 잘 입는다. 멋있다.”라고 하면 “뭐래~.” 해놓고 좋아하고.
이동연: 분장실에서 저희끼리 시시덕거리고 있는데도 절대 안 껴요. 뒤에서 안 듣는 척 혼자 서 있다가 껄껄껄 웃어요.
김채승: 이런 부분들이 맹도랑 비슷해요.
동료분들의 평에 동의하시나요?
이승준: 말을 아끼겠습니다. (웃음)
'거짓말을 하려면'에서 다른 타임라인의 에피소드가 대조되어 보이면서 천천과 비룡의 감정선이 굉장히 길게 이어지는데요. 이때 천천과 나누는 얘기나 감정의 흐름이 궁금합니다.
김채승: 세헌 천천은 저를 많이 달래줘요. “괜찮아.”라고 하지만 그걸 들으면 비룡 입장에서는 더 미안해져서 제 탓을 하게 되는데 꽉 붙잡고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얘기를 해주니 마음속으론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반면에 경호 천천은 정말 괜찮은 것처럼 칼같이 굴다가도 아픈 모습을 보여주니까 스스로 죄책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젠 내게 하나밖에 없는 사형이고, 내 모든 아픔을 감수해줬으니까 이제부터 내가 사형을 끝까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천천이 비룡에게 해준 것처럼 저도 끝까지 함께하며 돌려줄 거예요.
이승준: 저희 모두 <결투>를 보긴 했어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진 못하니 참여했던 친구들에게 이럴 땐 어땠어? 라는 질문을 꽤 많이 던졌어요. 전작에서는 비룡이 어떻게 마음을 열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반면에 여기서는 확실히 보여주다 보니 시간순으로 과정을 나열해서 생각해봤는데요. 천천에게 꽃을 받고 마음의 문을 80% 정도 열고, 비급을 찾고 난 이후 ‘천천 사형’이라는 넘버를 부르면서 마침 비룡이 조명 속으로 들어가는 연출이 있거든요. 그 조명이 천천이라고 생각하며 ‘이제부터 천천을 진짜 사형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야지.’라고 다짐해요. 그런데 그때부터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맹도의 복수를 하러 가는 와중에 천천까지 잃게 되는 어려운 상황이 연속으로 닥치게 되죠. 사실 천천을 싫어하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가 받아들인 시간은 너무 짧은 점이 비룡의 입장으로선 비극이죠. 사형은 그 긴 시간을 날 위해 기다려 줬는데, 나 때문에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날 이렇게 위한다고? 그러면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요. 겨우 사형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부터 천천과 같이 해나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천천들이 어떤 식으로 다가와도 미안함이 너무 커서 오히려 어떤 응답도 해주기가 어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동연: 해독환을 양보한 천천에게 감사함 보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더 크게 다가오다가 비룡을 위해 자신을 떠나라고 말하는 천천의 마음을 알기에 너무나 안쓰럽고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형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한게 아닌걸 깨달으며 너무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다가옵니다. 사부님과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도 천천은 해독환을 비룡에게 양보해줬을것이고 비룡도 사형을 떠나지 않았을것 같아요!
‘행협일심’에 대한 각 배우분들의 정의 또는 생각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렵다면 이 극의 엔딩에 대해 코멘트해주셔도 좋습니다!)
이동연: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마음이 없으면 소용없고, 무공이 없어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싸움의 승패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을 품고 해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건 우리 모두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채승: 내가 죽더라도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선한 일을 행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무저갱에서 맹도도 자신이 죽더라도 아이들을 살리고, 너희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천하라고 말하는 것 역시 행협일심이고 그 뜻이 후세대에도 잘 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준: 제가 감히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행협일심이 바로 <협객외전>의 주제라고 생각해요. 무협이라는 장르 안에서 표현하고 있다 보니 ‘협’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이미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작품 속에서는 얽히고설킨 관계와 약속, 지난날의 좋았던 기억, 과거를 상쇄시키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들이 벌어지는데요. 서로 떨어져 있거나 헤어져 있어도 모두 잊지 않고 각자의 마음이 하나하나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잖아요. 현실에서도 모두가 똑같은 마음으로 제자리에서 나아가고 있으면 그게 하나로 모였을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거창하고 건설적인 이야기 같지만,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데 지치고 힘들어도 협객외전의 인물들처럼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 믿음 등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김채승: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저희는 관객분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거든요. 무대에 존재하는 이유는 관객분들 때문이고. 덕분에 많은 힘과 위로와 행복을 얻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더욱더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테니까 저희 <협객외전>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시고, 많이 찾아와주시면 꼭 더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동연: 모두가 다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공연 하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발전하고 있을 테니 믿고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이팅.
이승준: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제가 뭐라고 절 보러 극장으로 찾아와 달라고 말하는 게 조금 어렵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을 모아 하나하나 자리를 채워주고 계시는 점에 대해 진부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거에 대한 답은 저 포함 우리 모두가 매일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장소 협찬 크림슨파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