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연출, 극작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고 계신데요. 학창시절 생각한 진로는 어느 방향이었나요?
처음엔 연극학과로 진학했죠. 그때는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다른 방향은 생각한 적이 없어서 입시학원도 연기로만 준비했고요. 연극은 다양한 파트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선망하게 되는 건 배우잖아요. 그런데 중앙대는 학교 내 커리큘럼 구분이 없었거든요.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무대 작업도 하고. 공연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걸 배울 수 있었죠. 글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가장 적성에 맞는 분야는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능력치와 상관없이 적성에 맞는 건 배우죠. 제 스스로 어떻게 적성을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장 즐길 수 있고, 하고 싶은 건 연기인데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보니 저를 많이 불러주는 곳에서 일하게 돼요. 적성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연기, 극작가, 연출 순서인 것 같지만 (웃음) 많은 곳에서 저를 연출로 불러주시니 그것만으로도 속으론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기쁘기도 하고요.
연출로서 지키려 하는 선이나 유지하고자 하는 색깔이 있으신가요?
가장 많이 고려하는 건 역시 관객들이 재미있는가, 없는가겠죠. 항상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또 스스로도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어서 내가 얻는 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있거든요. 물론 그 재미라는 게 철저히 제 기준이긴 해요. 제가 주류 감성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즐거워하실 연출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래도 제 기준에서, 제가 관객이라고 생각했을 때 재미있는 걸 선호하고요. 그리고 또 중요한 건 동시대성이죠. 관객분들이 '왜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봐야 하지?'라고 생각하시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배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어쩌다 보니 계속 어두운 작품을 하고 계시는데요, 연출님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색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 스스로는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희극도 좋아해요. 그래서 처음엔 의문이 있었죠. 왜 내 안에서 이렇게 어두운 게 나올까, 하고요. 처음에 사의 찬미를 만들었을 땐, 내 안에 이런 감성이 다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그 조금 전에 깨달았죠. 네오에서 아동극을 만들었는데 그걸 본 아이들이 다 우는 거예요. 학부모님들이 왜 아동극을 이렇게 만드는 거냐고 항의하셨어요. (웃음) 그걸 보고 네오 대표님이 아, 저 사람은 좀 어둡구나. 하면서 사의 찬미를 의뢰하신 거죠. 그 아동극은 공룡이 나오는 작품이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저야 물론 그때까지 배운 대로 긴장감, 갈등을 전부 집어넣은 건데. 막상 완성되니 너무 무서워서 학부모님들께 많이 혼났습니다. (웃음) 대본을 쓸 때 저도 모르게 시니컬하고 차갑고 어둡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 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제 안에 자리잡은 주요한 감성은 아무래도 어두운 편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어둡고 추한 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죠. 다만 아직 제가 부족하다 보니 한정되어 버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어두운 분위기에서 나오는 장점이 있어요. 관객분들도 좋아하시고요.
사실 전 사의 찬미도 그렇고, 신기하게도 관객분들이 많이 찾아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의아했어요. 세상에 나처럼 속에 이런 어두운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위로도 되고.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이런 생각도 하고. (웃음)
아까 말씀하신 동시대성과 부합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죠. 사실 제가 세상을 그러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아요. 공평하게 모두 함께 멸망하면 좋을 것 같아요. 소행성이 충돌한다거나 그래서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고. (웃음) 오늘 당장 죽어도 큰 후회가 없어요. 내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사는 거죠. 사실 내일이 없기 때문에 오늘의 의미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가 없다는 건 제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인 것 같고요.
연출하는 극에서 배우들이 원하는 방향성 등을 존중하신다고 들었어요. 일부러 연기의 폭을 넓게 열어두는 편이신가요?
아무래도 소극장은, 제가 관객이라는 기준에서 보았을 때 배우들이 열정적으로 나서며 돋보일 때 만족도가 높았어요. 그리고 두 번째 관람에서 배우가 바뀌며 또 다른 느낌을 주게 되면 그것도 즐겁고요. 일단 배우들이 무대에서 쏟아내는 열정과 에너지들에 저는 너무 큰 감동을 받아요. 그래서 소극장 연극을 연출할 땐 배우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려 하는 편이죠. 제가 조금 더 내공이 깊어진다면 배우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배우들을 더 존중하게 되고 그분들의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해오는 해석은 토론의 가치가 충분하고요. 제가 방향을 열어둔다기보단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거죠.
연출님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래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가끔 충돌할 때가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정확한 그림을 가지고 대본을 썼고 연습에 들어간 거잖아요. 배우가 전혀 다른 해석을 가지고 온다면 바로 '그래, 좋아. 그걸로 사용하자.'이렇게 하진 않아요. 일단 제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생각해보겠다고 하죠. 그렇게 대화를 거치면서 배우가 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도 배우가 '하지만 내 해석은 이러하다.'라고 말하면, 그건 충분히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결정한 부분인 거잖아요. 제 생각과 다르다 해도 관객분들은 좋아하실 수 있고요.
학창 시절에 대본과 작사를 맡으셨던 '라비다'가 이번에 햄릿 얼라이브로 올라온다고 들었어요. 10년이 지난 글을 다시 보면서 느끼는 여러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라비다로 먼저 프로젝트가 시작되긴 했지만, 지금은 라비다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훌륭한 연출님이 계시기 때문에, 연출님의 구성을 따라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될 거고요. 이제 10년 전 라비다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거고, 대극장만의 강렬한 그림, 강렬한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10년 전 작품과의 연결고리는 거의 없고요. 다시 원작을 들여다보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햄릿이라는 극은 원래 좋아하셨나요?
사실 남자 연극학도들은 다 햄릿을 좋아하는데, 더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에 비하면 유명한 작품이라는 정도였어요. 그냥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동경하는 학생이었죠. 그런데 첫 뮤지컬을 쓸 때, 사실 그때는 플롯을 구성할 역량 같은 게 부족하니 햄릿을 바탕으로 한 번 만들어 보게 된 거예요. 햄릿이 우리가 알기엔 고전이니 지루할 것만 같은데 줄거리만 정리하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거든요. 현대로 넘어오면서 햄릿이란 작품을 지루하게 만드는 건 수많은 수사, 시어들이지만 플롯만 남겨버리면 아주 힘있고 대중적인 극이더라고요. 왜 이걸 안 만들지?! 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10년 전 당시엔 그런대로 화제에 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계기로 햄릿을 좋아하게 됐죠.
연출, 작가로써의 이야기도 들었으니 성종완 배우님에게도 질문할게요.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다시 배우로 돌아오시게 되는데, 출연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이번 제작진엔 제가 배우로 활동할 때 뵌 스태프나 제작자 분들이 있어서요. 제임스 역을 누구로 할까 회의하다 제 이름이 나왔다고 해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마침 예전에 김동연 연출님이 맡으셨던 환상동화에서 제가 피아노를 쳤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름이 나왔던 것 같아요.
굉장히 잘 어울리셨어요.
그런가요? (웃음) 다행이네요. 이제 앵콜 시작하기 전에 살을 빼야 해요. 살이 너무 많이 쪄서. 그때 입은 건 맞춤복이라 안 맞을 거예요. 공연 후반부에도 조금 안 맞았는데. (웃음) 제게는 너무 행운 같은 공연이에요.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는데 관객분들도 잘한다고 해주시고, 객석도 꽉 채워주시고, 앵콜에 또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의 제임스를 연기하고 계신데요, 원래 성격도 제임스에 가까우신가요?
아니요. 저는 진짜 차가운 사람인데, 가끔 저도 헷갈려요. 사실은 내가 따뜻한 성격인가? (웃음) 사실 나이 먹으면서 눈물이 많아지긴 했어요. 따뜻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은 못하지만 그러려고 노력은 하죠. 어떤 배우들은 가끔 저한테 진짜 차갑다, 사내나 이재현이 본인을 모델로 한 거 아니냐, 그런 말도 하는데. (웃음) 그래도 계속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요즘 들어서야 공연이 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공연은 사람이 만드는 거고,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거구나. 그런데 제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안 되잖아요. 피부가 우릴 나눈 이상 타인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문장도 본 적 있지만 전 그래도 어떻게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요. 특히 대학로는 조금 더 앞서가는 곳이잖아요.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애정, 배려, 이런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워낙 오랫동안 고루한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아직 부족한 면이 많죠. 인종, 성적인 것, 소수자들에 대한 것. 또 남녀차별에 관한 것도 요즘 큰 이슈잖아요. 여전히 저는 생각이 부족해요. 페미니즘이라는 면에서 저는 아직 시대착오적이고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죠.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까사 발렌티나 연출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꼭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 당시엔 지금보다 더 이해를 다 하지 못한 채 만들었던 것 같거든요.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중에 공연이 올라가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요즘은 많은 글을 읽으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무지했던가 생각하게 되고요.
연출하다 배우를 하면 그런 시선이 연기에 묻어나시나요?
아, 어쩌면 질문의 요지와는 조금 다를 수 있는데요. 이번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느낀 건 아니고, 2013년에 환상동화에 들어갔을 때 느꼈어요. 제가 배우로 활동하고 있을 때 (김)동연 연출님이 항상 저한테 말씀하셨거든요. '너는 너무 연기가 객관적이야. 더 몰입해서 해야 해.' 사실 당시엔 그 말이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연기가 객관적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그런데 연기를 그만 두고 3년 동안 연출을 하면서 그제야 알게 됐어요. 오히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대학로에서 몇 년 동안 연기하면서 저는 연출 같은 마인드로 무대에 섰던 거예요. 연기를 하면 그 캐릭터로만 존재해야 하는데 묘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고, 지금 저 사람이 부각되어야 하는 장면이니 나는 죽어 있자, 이런 생각을 하곤 했죠. 그리고 연출하면서 동연 연출님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고, 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극중의 인물은 인물대로 시야를 좁혀서, 자기 욕망대로 부딪치는 게 갈등이고 드라마구나.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시야를 좁히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 공간과 나를 관망하고 있으니 충돌이 잘 생기지 않는 거구나. 그걸 알게 됐어요. 덕분에 2013년에 다시 배우로 들어갔을 땐 오히려 연기 평이 좋았죠. 연출과 배우를 오간 건 양쪽 분야에 모두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다시 연기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제임스는 등장이 적지만 큰 임팩트를 주는데,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하시나요?
올리버를 향한 애착이죠. 그게 가장 핵심인 것 같아요. 올리버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 부분이요. 공연 도중엔 최대한 덜 울려고 했지만 연습할 땐 너무 많이 울었어요. 올리버가 반려 동물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특히 반려 동물 키우는 배우들이 많이 울었죠.
올리버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으신가요?
종이 달라요! 다 반려견이지만, 반려견도 다들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스타일은 다르지만 다 사랑스러워요. 사랑하려고 애쓰고. 사실 지금 현대인들도 굉장히 외롭잖아요. 미래에는 더 외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단순히 편의 때문에 헬퍼봇을 두기도 하겠지만, 제임스는 역시 애착을 둘 무언가가 필요했을 거예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랑을 받기도 해야 하지만 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올리버에게 사랑을 주고, 올리버는 그 이상의 기쁨을 안겨줬어요. 그래서 전 '고맙다 올리버' 장면에서 세세한 하나하나를 다 눈에 담고 많이 느끼기 위해 노력해요. 무대 위에서 제임스가 올리버를 향해 보여줄 수 있는 건 그 장면이 유일하잖아요. 아무래도 올리버를 향한 애착을 많이 가지게 돼요.
종이 다 다르다고 하셨는데, 어떤 종인지 생각해보셨나요?
제가 반려견 종류를 잘 몰라서 이름으로는 대답이 어려운데, (정)문성이는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해요. 어느 스태프가 문성이의 다른 작품 연습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연습실 바닥 마킹해둔 곳으로 문성이가 등장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았대요. 아무런 연기도 안 하고 등장만 한 건데. 문성이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또 욱진이는 귀찮을 정도로 애정을 표현하는 면이 있잖아요. (웃음) 굉장히 열정적이고. 그리고 재범이는 영리하고 장난기가 있어요. 헬퍼봇인데도 불구하고 주인의 감정 상태까지 전부 고려하는 느낌. 장난도 많이 치고요.
제임스가 올리버를 떠난 이유가 있었나요?
제임스 같은 경우엔 결혼 때문이었던 걸로 제가 서브텍스트를 만들긴 했어요. 아내와 가족들이 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서브텍스트가 있었고, 또 제임스는 큰 병도 앓고 있었고요. 같이 있고 싶지만 불가피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임스와 올리버는 안타까운 거죠. 끝까지 서로 그리워하고요. 피아노를 치러 나갈 때 저는 이미 많이 병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나가요. 많이 아픈 상태에서 마지막 기력을 다해 우린 왜 사랑했을까를, 올리버와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치는 거죠. 둘 사이에 많은 추억이 있을 거예요. 레코드판을 받은 기억, 피아노를 같이 친 기억.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이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저희도 그래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제가 코러스를 넣는 장면이 있는데요, 코러스 넣고 있으면 무대 위의 소리가 들려요. 중간에 클레어가 레코드판을 떨어뜨리잖아요. 그때 진짜 울컥해서 우우~ 하다가 울먹거리고. 그때 항상 마이크 봐주는 스태프가 있는데 그분한테 '너무 슬프다.'라고 하면 그분도 울먹거리면서 고개 끄덕거리고. (웃음) 또 저희 분장실에 모니터가 있거든요. 반딧불이 한 다음에 둘이 행복해하는 장면, 그리고 기억 지우기 직전에 충전기 자리로 갈 때. 그걸 모니터로 보면 영상을 일부러 연출한 것처럼 잔상이 남는 화면이 돼요. 중경삼림 같은 연출이라고 할까요. 그때도 정말 감동받아요.
마지막에 올리버와 클레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따뜻하게 지켜보는 것보단 굉장히 걱정하는 걸로 보여요.
맞아요. 저는 걱정하면서 보고 있어요. 그 애들이 행복할 리 없잖아요. 그냥 그 순간이 아름다운 거죠. 그래서 우린 왜 사랑했을까 리프라이즈를 부르면서, 속으로 항상 생각해요. 올리버, 정말 괜찮겠어? 또 문득 올리버가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죠. 그러면 충격을 많이 받고 반성도 해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 걸까. 클레어 역시 제가 물어본 적은 없지만 기억을 지운 날도, 지우지 않은 날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너무 슬프죠. 유기견 둘이 그러는 것 같잖아요. 음, 여전히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진 않네요. (웃음) 어쨌든, 괜히 갖다 붙이는 것 같긴 한데 사의 찬미도 끝은 불행할지언정 한 순간의 소중함을 따라가는 게 인간의 가장 큰 의지이고 신념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늘 감동을 주죠.
연출로서 해보고 싶은 극이 있으시다면?
취향을 말씀드리면 될까요? 이제 밝은 걸 해보고 싶어요. 어두운 건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제가 밝은 걸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예전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요즘엔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해요. 음, 저는 데이빗 핀처 감독을 좋아하거든요. 세븐, 파이트 클럽, 나를 찾아줘. 그런 분위기를 연출해보고 싶어요.
어둡네요.
어둡죠. (웃음) 좀 더 밝은 걸 생각한다면 콜래트럴 뷰티. 한국 제목은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였던 것 같아요. 사실 앞으로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상실이 있는 사람들, 결핍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요. 공연을 통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고요. 하하, 제가 극작가를 겸하다 보니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연출만 하는 분께 질문했다면 아마 스타일적인 이야기를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저도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영화감독을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 영화요. 라라랜드를 너무 재미있게 봤고, 어쩌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연극과에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갔더니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분명히 영화도 찍기 시작하면 어렵겠죠. (웃음) 그래도 한번쯤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번에 올라오는 배니싱은 많이 바뀌나요?
네, 많이 바뀔 거예요. 일단 여자 캐릭터가 사라지고 남성 삼인극이 되는데요. 물론 조선 최초의 뱀파이어라는 캐릭터와 의사, 둘의 이야기 라인은 동일하고요. 명렬이라는 캐릭터는 안타고니스트이면서 나이도 굉장히 폭넓게 연기하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시간을 2, 3년 가량의 이야기로 압축하고 캐릭터도 3명 사이에서 일어난 일로 압축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트라이아웃보다 조금 간결해지고, 음악적으로는 풍성해지고요. 캐릭터와 캐릭터간의 관계를 더욱 강화했고. 그 정도로 바뀔 거예요.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얼마나 바뀐 것으로 다가갈지 모르지만 작업량은 굉장히 많았어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일단 배니싱을 준비하고 있고요. 그리고 내년에도 준비하는 작품이 있어요. 지금까지 했던 것과 비슷한 규모가 될 것 같고, 이야기 중인 게 두세 작품 정도 있어요. 그 작품 개발을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한 작품은 중극장 정도가 될 것 같기도 한데,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건 없네요. 정확하게 정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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